피아니스트 (The Pianist, 2002)

내가 아직 학생이던 시절 음악시간에 짬짬이로 선생님이 틀어주셨던 영화가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친구들과 수다떨고 책상에 엎드려 자느라 크게 관심을 주지않았다. 세월이 지나 그런 영화가 있었지.. 하며 호기심에 찾아본 영화가 바로 이 영화 피아니스트다. 그리고는 바로 내 인생영화 중 하나가 되었으며 나의 전쟁에 대한 막연한 감정을 확실하게 두려움으로 바꿔준 영화이기도하다. 그 전까진 전쟁에 대한 기대와도 비슷한 느낌의 어리숙한 감정으로 '전쟁이 나면 어떨까?' '차라리 전쟁이 났으면!' 이라는 실 없는 소리를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피아니스트는 `전쟁의 기록`, `전쟁의 통계치` 와 같은 전쟁의 겉모습이 아니라 `전쟁의 실체`, `전쟁을 겪는 사람들` 등 전쟁의 진짜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과거 어렸던 자신이 부끄러워 질 정도로 나의 생각을 완전 바꿔놓았다. 과거 그들의 삶과 경험을 나에게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 작품은 피아니스트가 단연 최고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영화에선 유대인뿐들만 아니라 대비되는 독일군들의 행태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정말 같은 인간이라고는 생각 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끔찍했었다. 그들도 똑같은 인간이고 가정이 있는 사람들일텐데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광기에 둘러싸이게 했는지 나는 영화를 보고나서도 그 점이 나의 인간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슴 속에 남게되었다. 과연 그들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촉매제와 사상, 그리고 그때의 시대상이 어떠했는지 현대를 살고 있는 나에겐 큰 궁금증이 아닐 수 없다.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은 라디오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다가 폭격을 당한다. 우리는 스필만이 계단을 내려오면서 친구의 여동생과 인사를 주고받는 것과 표정으로 봐서 이때까진 전쟁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않은 걸 알 수 있다. 마치 전쟁에 무지했던 과거의 나처럼 말이다. 하지만 스필만뿐만아니라 라디오에서 나오는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선전포고로 마음을 놓고 만찬을 벌이는 가족들로 보아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무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점점 더 상황은 나빠지고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유대인에 대한 학대는 `사람을 가축처럼 대한다는게 바로 저런 것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하고 나의 뇌리에 박혀 아무 말도 할 수 없게만들었다. 그리고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지기 전 유대인들이 모여있는 공간에서 감도는 암울함이란.. 그 와중에서도  가족과 그 작은 카라멜 1개를 나눠 먹는 장면은 정말 애틋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주인공 스필만은 친분이 있는 사람의 도움으로 혼자 살아남게되었다. 그 장면이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기적이게 보였을 수도 있지만 그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그 뒤 적막한 도시를 울면서 걸을 때를 조금이라도 생각해본다면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뒤엔 여러가지 일을 겪으며 게토에서 벗어나기 전 유대인들의 일터에서도 참혹하게 학대당하는 모습을 어렵지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힘든 와중에서 유대인들은 서로에 대해 아끼고 돕는 모습이 독일군과 대비돼서 안타깝게 느껴진다. 게토에서 벗어나 야니나 부부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이곳 저곳 몸을 옮기며 살아간다. 그러면서 점점 피폐해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그 뒤로도 계속 숨어다니다 폐허가 된 건물들에서 먹을 것을 찾아 다니는 모습은 안쓰러울 따름이다. 그 폐허라는 배경은 전쟁의 허망함 그 자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던도중 만난 인물인 호젠벨트라는 독일 장교를 만나 폐허 속에서 스필만이 피아노를 치게되는데 그 눈과 몸 짓엔 음악에 대한 열망이 느껴졌다. 그 짧지않은 연주시간에서 스필만이 겪었던 고통이 그대로 전해져오는 느낌이였다. 그로 인해 스필만의 재능을 알아보고 먹을 것을 주며 살려준 호젠벨트지만 마지막에 스크린이 올라가면서 소련 포로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한다. 호젠벨트의 책상 위엔 가족사진이 올려져있었는데 독일군들이 다 광기어린 것은 아니였구나.. 하고 막연히 생각이 되었다.. 결국 스필만은 다시 피아노연주자로 복귀하면서 끝이나는데 그의 마지막 연주는 긴 여운을 남기고 갖은 생각을 하게한다. 전쟁에 대해서도 인간에 대해서도 그리고 스필만의 경험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는 스필만 역을 맡은 `애드리언 브로디`는 과거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지만 이 영화로 인해서 내 뇌리에 정말 대단한 배우로 낙인을 찍게되었다. 그의 연기가 아니였다면 과연 이 정도까지 감명깊게 볼 수 있었을까싶다. 감독은 `로만 폴란스키`인데 그도 스필만 처럼 폴란드계 유대인으로써 어려서 독일의 침공을 경험했으며 온갖 고통과 고초를 다 겪은 인물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자세하며 전쟁의 실상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었겠지. 감독은 스필만 역에 맞는 사람을 찾기위해 수 천명의 오디션을 봤는데 그를 만족시킨 배우가 없어서 `어페어 오브 더 네클레스' 에서 `애드리언 브로디`의 연기를 보고 감명을 받아 그를 캐스팅 했다고한다.  그 결과 이런 명작이 탄생했으니 감독의 선택은 그야말로 옳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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