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으뜸명주 '금문고량주'



만이라고 하면 어떤 것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전 대만이라고 하면 다양하고 맛있는 먹거리와

사람들에게서 대만에서 반드시 사와야할 것으로 꼽히는

'금문고량주(金門高梁酒)' 가 생각이 납니다.

금문고량주는 현지에서는 1만5천원 정도의 가격이지만

수입되어오면서 가격이 뻥튀기가 되므로 반드시 현지에 가면 사 오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시간에는 '금문고량주(金門高梁酒)'에 대하여 소개해보겠습니다.






   '금문고량주(金門高梁酒)'란?


금문고량주는 주류회사인 '금문주창(金门酒厂)'에서 만들고 있으며,

그 이름은 금문주창이 있는 섬인 대만의 '진먼도(金门岛)'에서 따 왔습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금문고량주는 다른 고량주와는 달리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데,

과거에 금문고량주는 1952년 9월 진먼도(금문도)에 세워진

'구룡강주창(九龍江酒厂)'에서 생산을 시작했으며,

1956년 이 회사는 '금문주창'으로 이름을 고쳤습니다.


금문고량주는 대만의 3대 명주 중에 으뜸으로서 다른 고량주와 격을 달리하며,

대만에서의 금문고량주의 시장 점유율은 80%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금문고량주가 중국 대륙에 진출하게 된 것은 2004년부터이며,

중국 샤먼시에서 '금문주창무역공사'를 전액을 투자하여 설립하여

금문고량주의 대륙으로의 공급을 책임졌습니다.


그 뒤 2007년 중국 정부로부터 '순곡식고태발효백주'의 인증을 받았으며,

2010년에는 중국 국가상공총국에 의하여 '중국치명상표'로 인증되었습니다.

또한, 2011년에는 100대 대만 명 브랜드에 들었으며,

2013년 세계의 화교들로 구성된 '중국평화통일활동조직위원회'는

대륙의 마오타이주와 대만의 금문고량주를 대륙과 섬을 잇는

평화의 상징물로서 선정할 정도로 대만뿐만 아니라 중국 내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술입니다.







   '금문고량주(金門高梁酒)'의 특징


금문고량주의 도수는 38도와 58도 두 가지로 나뉘는데

사실 38도짜리 금문고량주는 외국인들을 위해 생산한 것이며,

대만 본토에서는 58도의 도수를 가진 금문고량주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금문고량주는 특히 여러 향미 물질이 섞여서 나는 복합적인 향기가 특징인데,

이는 ‘금문향형(金门香型)’라는 특수한 향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술 자체는 투명하고 윤기가 나며 맑은 향이 짙게 퍼지며,

부드러운 술맛을 가졌으며, 상쾌한 뒷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높은 도수 덕분에 기름진 중국요리와 잘 맞으며,

다른 요리와 함께 먹기에는 좀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도 있습니다.


그리고 금문고량주는 숙성하는 곳이 특이하기로 유명합니다.

진먼도에는 과거 냉전시대에 방공전을 대비하기위하여 만들어진 갱도가 많은데,

현재는 군사적 가치를 지니지 못한 채 관광용 혹은 산업용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금문고량주 또한 이들 갱도에서 저장 숙성됩니다.

갱도에는 온도와 습도가 일정한 환경을 가졌기 때문에,

특수한 균종들의 번식, 생장을 촉진하여 술의 맛과 향을 돋울 뿐 아니라

술의 질을 안정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며,

금문고량주의 향과 맛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금문고량주(金門高梁酒)'의 역사


과거 장제스가 대만으로 쫓겨난 1949년 이후로 소수만이 살고 있던 진먼은

군사적 요충지가 되어 급격히 인구수가 늘게 됩니다.

하지만 섬이 지극히 작기때문에 인구수가 늘게되면서 많은 문제가 생겼는데,

그중 식량문제가 가장 크게 대두되었습니다.

그러나 진먼의 땅은 쌀이 자라기 힘든 환경이었고 수수만이 자랄 수 있었지만

사람들은 쌀을 주식으로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에 당시 진먼도 방어를 책임지던 금문방위사령관 후리옌 장군은

당시 대만 본토에서 매월 10만 병 이상의 술을 사 오던 돈으로 쌀을 사고

그 쌀로 현지 주민들에게서 수수를 구매하여 그 수수로 술을 생산하면

주민들도 좋고 군사들에게도 좋은 일이며 식량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찾아간 곳은 당시 진먼에서 가장 훌륭한 술을 빚는 예화청 선생의 집이였습니다.


그리하여 몇 번의 설득 끝에 결국 예화청 선생이 운영하고 있던 '금성주창'을 토대로

군 직할의 술 회사인 '구룡강주창(九龍江酒厂)'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예화청 선생은 기술과장으로서 입사하게 되었으며,

'구룡강주창' 설립 초기부터 끝까지 여러 번의 난관을 뛰어난 주조기술자들과 함께 헤쳐나가며,

결국 '금문고량주(金門高梁酒)'라는 대만의 명주를 탄생시켰습니다.


또한, 1956년 7월 1일 정식으로 '구룡강주창'의 이름이 '금문주창(金門酒厂)'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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